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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월리해수욕장의 평화가 스며드는 시간. 건물 하나 없이 자연으로 가득한 해변의 고요를 스마트폰 없이 누린다.


끝없는 스크롤의 도파민에 갇혔다
'스몸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스몸비는 '스마트폰 좀비'를 줄인 말로, 스마트폰만 쳐다보며 주변을 살피지 않고 걷는 사람을 뜻한다. 집에서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했다. 우리는 점점 조용한 가족이 되었다. 대화 없는 식사. 버스에서도, 잠자리에서도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 짧은 영상의 쾌락에, 끝없는 스크롤의 보험중개 도파민에 일상을 빼앗겼다. 일상을 되찾으려 인천 문갑도로 '노 디지털NO DIGITAL 가족 여행'을 떠났다.



해발 275m의 문갑도 깃대봉 정상. 덕적군도의 41개 섬 중 가장 높지는 않지만, 경치의 시원함은 최고로 꼽을 만하다.


jlpt고사장 사자와 바다의 싸움, 알 수 없는 안도감
배에서 내리며 약속했다. 길찾기 위한 GPS 목적 외에는 스마트폰은 꺼내지 않기로 말이다. 사자바위로 향했다. 어루재 지나, 거미줄 얽힌 사람 발길 드문 길. 조난의 불안은 오래 가지 않았다. 숲터널을 빠져나오자, 햇살이 작열하는 바위의 향연. 흰 사자와 누런 사자가 나란히 서 있 카드론 대환대출 고, 파도가 1~2m씩 거칠게 튀어 올라 사자를 위협하고 있었다. 윤슬은 은갈치 비늘처럼 살아 펄떡이고, 건너편 선갑도는 거대한 흑등고래처럼 존재감을 과시하고, 굴업도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흘러간다. 거대한 자연 속에서 알 수 없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사자바위와 벌집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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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으로 얻는 깃대봉의 환희
깃대봉으로 향한다. 원추리꽃이 노랗게 활활 타오르고, 숲은 여름을 뒤에 두고 가을을 향해 내달린다. 275m가 이렇게 시원한 높이였나? 정상에 올라서자, 덕적군도德積群島의 40여 개 섬이 드러난다. 파노라마로 펼쳐진 서해의 시원함에 헉헉거리며 올라온 시간이 자동이체 신청 잊혀진다. 짧은 영상이 주는 쾌락보다 땀 흘려 얻은 이 순간의 값어치가 얼마나 깊은가. 모처럼 온 가족이 환하게 웃는 사진을 찍었다.



처녀바위에서 본 망망대해와 선갑도. 


순결한 바다, 한월리해변
하산 후 도착한 한월리해변은 카페도, 식당도, 음악 소리도 없는 순결한 바다였다. 사람 하나 없이 고요로 가득한 해변. 돗자리를 펴고 의자를 놓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몸이 멈추자 기어코 스마트폰에 손이 간다. 그럴 때마다 가족들이 웃으며 말렸다. 결국 가져온 책을 펴고, 파도 소리를 듣고, 하늘의 숨결을 함께했다.



맞은편 덕적도와 소야도가 순한 굴곡으로 흘러간다. 


마음 속 깊은 곳의 문갑
문갑도는 지루하고 심심할 줄 알았다. 나 자신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고요 속에서, 잊고 있던 마음이 조용히 말을 걸어 왔다. 마음 깊은 곳의 문갑 속에 있던, 알면서도 외면했던 묵은 슬픔이 스르르 녹아서 흘러나왔다. 고요는 나쁜 것이 아니었다. 디지털 세상에서 놓쳤던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풍성하게 꽃을 피운 수국이 마을을 꾸미고 있다. 


마음을 지켜줄 방패를 가지고 나왔다
언젠가 다시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게 될 날이 오더라도 두렵지 않다. 그때 나는 지금 이 고요를 꺼내야겠다. 마음의 문갑 속 깊이 넣어 둔 한월리해변의 차분함을 기억할 것이다. 디지털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마주한 1박2일은 나 자신과 가장 가까이 앉아 대화하는 시간이었다. 섬을 떠나는 길, 방패를 가지고 나왔다. 내 마음을 지켜 주는 고요한 방패 문갑도를 말이다.



한월리해변의 썰물과 노을이 만나는 시간. 세상 끝에 온 것 같은 묘한 고립감이 나쁘지 않다. 





275m는 낮은 높이가 아님을 보여주는 깃대봉의 시원한 산세. 


문갑도의 모든 것
독갑도가 문갑도가 된 까닭은?
섬의 형태가 '장수가 투구를 쓴 모양'이라 하여 옛날에는 독갑도禿甲島라고 불렸다. 조선 후기부터 문갑도文甲島라 불렸다. 한자는 다르지만 문서를 보관하는 '문갑文匣'을 닮았다 하여 문갑도가 되었다는 설과, 어느 선비가 난리를 피해 이곳에 들어와 한자를 가르쳤는데 배움에 대한 주민들의 열정이 커서 "집집마다 문갑이 없는 집이 없었다"고 하여 이름이 유래한다는 설이 있다.
망구할매 "탁" 쳐서 생긴 섬들
덕적군도에는 망구할매 전설이 있다. 덕적군도는 인천에서 50여 km 떨어진 경기 남부의 덕적도 부근 41개 유인도와 무인도를 말한다. 먼 옛날 망구할매가 흙으로 선갑도에 산을 만들다가 무너지자 그것을 주먹으로 쳐서 그 흙들이 튀면서 41개 섬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물이 많아 물갑도
문갑도는 3.5㎢로 크지 않지만 계곡이 깊어서 옛날부터 물이 풍부했다. 조선시대 말엽 가뭄이 들면 인근 승봉도, 지도, 굴업도에서 주민들이 물을 길러 문갑도로 왔다고 한다. 때문에 물이 마르지 않는 섬이라 하여 '물갑도'라는 별칭이 있었다고 한다.
덕적군도 최대 새우어장
문갑도의 전성기, 요즘 말로 '리즈 시절'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다. 문갑도 앞바다는 새우가 넘쳐났다. 새우가 다니는 길목에 배를 띄워 그물을 놓고 하루 두 번 밀물 때 걷어 올리면 그물이 터져 나갈 정도로 새우가 가득했다. 주민이 1,000명 넘을 때도 있었으나, 지금은 50여 가구에 70여 명이 살고 있다.
새우 떠나고 사람들도 떠나
갓 잡은 새우는 장독에 담아 새우젓을 만들었다. 새우가 워낙 많이 잡혀서 장독을 만드는 공장이 두 곳 있을 정도였다. 독 공장에서는 새우젓 독뿐만 아니라 장독, 항아리, 시루 등 다양한 그릇을 만들어 인근 섬에도 내다 팔았다. 그러나 1970년대 새우가 고갈되고 싼값의 양철 드럼통이 대량 생산되면서 독 공장은 문 닫고, 주민도 줄었다.



순수한 자연으로 가득한 깃대봉 산길. 





초록 터널을 이룬 사자바위 가는 길.





벼락을 맞은 것처럼 갈라진 벼락바위.





얼굴바위에서 본 한월리해변.


문갑도에서 만난 사람"때 묻지 않은 자연과 순박한 인심이 자랑이에요"
이충환 이장



"진뿌리에 가 보셨나요? 해안선의 튀어나온 반도인데, 경치가 훌륭해요. 이번에 마을 기금을 들여서 작은 포클레인을 불러서 길을 정비했어요. 산길을 넓혀서 방문객이 편하게 갈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인천에서 중고교 교장을 지낸 이충환(74) 이장은 9년째 마을을 대표하고 있다. 평생 교직에 헌신한 적성을 살려 섬을 교실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청소해 왔다. 여간한 산길은 직접 제초기를 들고 정비하고 있다. 블루베리 농사가 주업인 그는 "작년 660kg을 수확했는데 올해는 수해를 입어 130kg밖에 수확을 못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 섬이 더 살기 좋아지고 있어서 만족한다"며 웃는다. 손해인데 괜찮냐고 묻자 "퇴직 후 들어올 때 고향에 도움이 되고자 왔다"며 "섬이 나아지고 있으니 충분하다"고 답한다. 2019년에는 옹진군 최초로 중앙 가스관이 들어와 주민 생활이 크게 편리해졌다. 섬 내에 일종의 도시가스가 생긴 것. 가구당 100여만 원을 부담하고 나머지는 국비 지원으로 설치했다. 그에게도 힘들었던 것은 '길을 내는 것'이다. 5개의 새 길을 냈는데, 군청에 건의해 예산을 끌어내는 일이 어려웠다고 한다. 면적의 대부분이 산이라 산나물과 산약초를 일구는 주민들 특성상 진입로가 필요한데 턱없이 부족했다고 한다. 이 이장에게 자랑거리를 묻자, 두 가지를 꼽는다. "자연과 사람이오.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순박하고 좋은 인심이 있어요."
"고기는 줄었지만, 바다는 여전히 삶의 터전"
김훈기·손영미 어촌계장 부부



"주민 전부가 어촌계 조합원이에요. 다 같이 캐고, 다 같이 판매해요. 양식장만 위탁을 해요.
한창때는 바다에 매일 배 타고 나갔어요.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아직 꽃게, 가오리, 우럭이 나와요. 100척이 넘는 배가 머물 때도 있었지만, 작업선 2척과 낚싯배 7척만 남았어요."
김훈기(66) 어촌계장은 문갑도에 몇 남지 않은 현역 어부다. 전문적인 조업이 가능한 배는 2척만 남았는데 그중 하나인 '광복호' 선장이다. 대부분의 주민이 고령화되어, 바다에 나가서 하는 어업보다는 갯벌에서 해산물을 캐는 것이 어촌계의 주된 일이 되었다. 어촌계장의 일은 어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며칠 전에도 갑자기 발생한 낙상 환자가 있어 덕적도를 다녀오는 환자 이송을 했다고 한다. 바다와 관련되거나 배로 가능한 일은 도맡아서 하는 셈이다. 문갑도에서 태어나 7년 육지 생활을 빼면 평생을 섬에 머물러온 김훈기 어촌계장과 그의 아내 손영미씨. 부부는 섬에서 카드 결제 가능한 가정식 식당과 두 채의 민박집을 운영한다. 손영미씨는 "창밖엔 바다가 펼쳐져 있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식사 하는 맛이 최고"라고 말한다. 광복호 민박식당의 식탁에는 대부분 섬에서 난 식재료와 손영미씨의 손맛이 더해진다. 평생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부부는 '좋은 사람들'이 있어 고향 섬이 좋다고 한다.
"문갑도의 자랑거리는 사람이에요. 마을 일도 항상 나누고, 부족하더라도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큽니다."
"섬살이에 남편 잃었어도, 문갑도는 내 사랑"
토박이 주민 문혜자씨



문혜자(81)씨는 15년을 제외하곤 평생 문갑도에서 살았다. 결혼 후 육지에 터를 잡은 적도 있지만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시어머니를 모시기 위해서였지만 무엇보다 "문갑도가 좋아서"였다. 도시인의 눈으로 보면 섬살이는 불편한 것 투성이지만, "문갑도가 제일 편하다"고 한다.
그는 문갑도에서 2남 1녀 중 맏딸로 태어났다. 23세에 첫사랑과 결혼했다. 남편도 문갑도 출신인 것. 그의 부친이 4대 독자였고, 사위도 아들처럼 귀하게 여겼다. 그러나 남편은 30년 전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덕적도로 가는 배를 급하게 불렀지만, 응급 이송이 여의치 않던 시절이었다. 문혜자씨의 첫째 아들은 올해 쉰일곱이다. 자녀 모두 인천에 자리 잡고 있지만, 고향 섬을 떠나길 원치 않는다.
"문갑도는 깨끗하고, 인심이 좋아요. 한번 와 본 사람은 항상 그 얘기를 해요."
여든이 넘은 고령에도 문갑도를 말할 때면 얼굴이 환하게 빛난다. 불편했던 섬살이에 첫사랑인 남편을 잃었어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지켜 온 문혜자 할머니. 지금도 인천 내륙의 자녀들 집에 갔다가 섬에 돌아오면 "아! 좋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고 한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